로부스타는 싸구려라는 말, 절반만 맞습니다

원두 봉투 뒷면을 보다 보면 ‘아라비카 100%‘라는 문구가 유독 자주 눈에 띕니다. 그럼 나머지, 그러니까 100%가 아닌 원두에는 뭐가 섞여 있는 걸까요. 대부분은 로부스타라는 다른 품종입니다. 그리고 이 로부스타를 두고 흔히 “싸구려 커피"라고들 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오늘은 이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애초에 다른 두 종류의 나무입니다
먼저 짚고 갈 게 있습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는 로스팅 강도나 가공 방식 같은 ‘처리의 차이’가 아닙니다. 나무 자체가 다른 품종입니다. 사과로 치면 부사와 홍옥처럼, 같은 커피나무라도 종이 갈립니다.
전 세계에서 마시는 커피의 상당 부분은 이 둘로 나뉩니다. 아라비카가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로부스타가 그 뒤를 잇습니다. 우리가 스페셜티 카페나 홈카페에서 만나는 원두는 대개 아라비카 쪽입니다. 봉투에 산지 이름(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케냐 같은)이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면 거의 아라비카라고 보면 됩니다.
로부스타가 ‘강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름부터가 힌트입니다. 로부스타(Robusta)는 ‘강건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품종은 병충해에 강하고, 낮은 고도의 더운 지역에서도 잘 자랍니다. 재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보니 대량 생산에 유리하고, 그래서 가격이 낮게 형성되는 겁니다. “싸구려"라는 인상은 여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로부스타가 병충해에 강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카페인입니다. 카페인은 식물 입장에서 일종의 천연 방어 물질이거든요. 로부스타는 아라비카보다 카페인 함량이 대략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페인은 쓴맛을 내는 성분이기도 해서, 로부스타 커피가 더 묵직하고 쓰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카페인 자체의 성질이나 일일 섭취 관련 정보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맛으로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아라비카는 산미와 향미가 다채롭습니다. 꽃 향이니 과일 향이니 하는 표현이 붙는 원두는 대부분 아라비카입니다. 반면 로부스타는 향의 결이 단순한 대신 쓴맛과 바디감이 강하고, 흔히 ‘고무 탄 냄새’나 ‘견과류의 구수함’으로 묘사되는 특유의 무거운 풍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왜 ‘절반만’ 맞는가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로부스타를 무조건 하급으로 보는 시각은 사실 정확하지 않습니다.
에스프레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블렌드에는 로부스타가 일부러 섞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크레마. 로부스타는 크레마를 두껍고 오래 유지되게 만드는 성질이 있어서, 잔 위에 진한 황금빛 거품을 얹고 싶을 때 요긴합니다. 다른 하나는 바디감. 우유를 넣는 카페라떼 같은 메뉴에서 커피 맛이 묻히지 않고 버텨주려면 묵직한 힘이 필요한데, 로부스타가 그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잘 재배하고 정성껏 가공한 ‘파인 로부스타’도 나옵니다. 로부스타라고 다 거친 게 아니라, 관리하기에 따라 충분히 좋은 잔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로부스타=싸구려"가 아니라 “저가 대량 생산 커피에 로부스타가 많이 쓰인다” 정도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품종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 관리의 문제인 셈이죠.
홈카페에서 이걸 알면 뭐가 달라지나
봉투 라벨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라비카 100%‘는 산미와 향을 살린 커피일 가능성이 높고, 블렌드에 로부스타가 들어갔다면 쓴맛과 바디를 의도한 배합일 수 있습니다. 둘 중 뭐가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잔의 방향이 어느 쪽이냐의 문제입니다.
핸드드립으로 산뜻하게 마시는 걸 좋아한다면 아라비카 싱글 원두가 잘 맞습니다. 반대로 우유를 넣은 진한 커피, 잔에 남는 묵직한 여운을 좋아한다면 로부스타가 섞인 블렌드를 일부러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늦여름 아이스라떼처럼 얼음과 우유에 묻히기 쉬운 메뉴라면, 바디가 탄탄한 블렌드가 오히려 더 만족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라벨의 품종 표기 하나가 그날 잔의 성격을 미리 알려주는 힌트라는 것. 그걸 읽을 줄 알게 되면, 원두 고르는 재미가 한 단계 늘어납니다.
이 글을 쓰며 참고한 것
- 식품의약품안전처 — 카페인 관련 정보
사진: - Landsmann -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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