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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AA의 AA, 맛 등급이 아니라는 사실

케냐 AA의 AA, 맛 등급이 아니라는 사실
케냐 AA의 AA, 맛 등급이 아니라는 사실

케냐 AA의 AA, 맛 등급이 아니라는 사실

봉투에 큼지막하게 박힌 ‘AA’, 그게 왜 있을까

원두 봉투에 ‘KENYA AA’라고 대문짝만하게 찍힌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저는 홈카페를 막 시작하던 시절에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A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붙었으니, 케냐에서 나오는 커피 중 제일 잘난 놈이겠거니 했죠. 학교 성적표로 치면 A+ 같은 거라고요.

그런데 몇 년 마셔보고, 등급 표기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 ‘AA’는 맛에 매긴 점수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원두 알갱이의 크기를 가리키는 표기예요. 이 사실 하나만 알아도 원두를 고르는 눈이 꽤 달라집니다.

케냐 봉투의 ‘AA’, 사실은 콩 크기 이야기

케냐를 비롯한 몇몇 산지에서는 수확한 생두를 구멍 뚫린 체(스크린)에 걸러 크기별로 나눕니다. 이 체의 구멍 크기를 재는 단위가 1/64인치예요. 예를 들어 스크린 18이라고 하면 구멍 지름이 18/64인치라는 뜻입니다.

이 기준으로 케냐 생두를 분류하면 대략 이렇게 나뉩니다.

  • AA: 스크린 17~18 정도, 지름 약 7.2mm 이상의 큰 콩
  • AB: 스크린 15~16 정도, A와 B 등급을 합쳐 부르는 중간 크기
  • PB(피베리): 체리 안에 콩이 하나만 둥글게 들어찬 단립종
  • 그 아래로 C, TT, T, E 등 더 작거나 가볍거나 모양이 다른 것들

즉 AA는 “크기가 크고 균일하게 잘 걸러진 콩"이라는 뜻이지, “제일 맛있는 콩"이라는 보증서가 아닙니다. 과일 가게에 비유하면 딱 맞아요. 사과를 ‘특大 / 大 / 中’으로 나눠 파는 것과 같습니다. 특大 사과가 보기엔 탐스럽지만, 그렇다고 그게 항상 제일 달고 아삭한 건 아니잖아요. 크기와 당도는 별개의 문제니까요.

왜 하필 크기로 나눌까

그럼 왜 이렇게 크기부터 나눌까요. 이유는 의외로 현실적입니다.

첫째, 로스팅할 때 크기가 고르면 다루기 편합니다. 콩 크기가 제각각이면 같은 불에 볶아도 작은 콩은 먼저 타고 큰 콩은 덜 익어요. 크기를 맞춰두면 로스터가 열을 균일하게 먹일 수 있습니다.

둘째, 거래와 유통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고 기계로 걸러낼 수 있는 ‘크기’는 사고파는 사람 모두가 합의하기 쉬운 잣대예요. 맛은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지만, 스크린 사이즈는 체만 있으면 누구나 똑같이 잰단 말이죠.

셋째, 큰 콩이 밀도가 좋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케냐는 고지대에서 자라는 데다 콩이 단단하고 큰 편이라, 큰 알갱이가 잘 여문 경우가 많긴 합니다. 그래서 AA가 “잘 관리된 로트일 가능성"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건 맞아요. 다만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이지, 크면 무조건 맛있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럼 맛은 어디서 갈릴까

크기가 맛의 등급이 아니라면, 진짜 맛은 어디서 결정될까요. 답은 컵 품질을 따로 평가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케냐 커피는 크기 분류와 별개로, 실제로 내려 마셔보며 향미와 결점을 채점하는 커핑(cupping) 과정을 거칩니다. 산미의 결, 바디감, 단맛, 잡미가 있는지 같은 걸 사람이 직접 평가하죠. 같은 AA 등급 안에서도 커핑 점수는 천차만별이라, 어떤 AA는 같은 산지의 AB보다 낮은 점수를 받기도 합니다. 크기 등급과 맛 점수는 애초에 다른 자로 재는 겁니다.

그래서 원두를 고를 때 정말 봐야 할 건 AA라는 글자보다, 그 뒤에 따라붙는 정보예요. 어느 지역, 어느 농장(혹은 협동조합)에서 왔는지, 가공 방식은 무엇인지, 로스터가 적어둔 향미 노트(예: 자두 산미, 블랙커런트 같은 새콤함)가 내 취향과 맞는지가 훨씬 실질적인 단서가 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케냐를 포함해 해마다 상당한 양의 생두를 들여오는데, 산지별 커피 수입 물량 흐름은 관세청 통관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산지가 우리 식탁에 얼마나 들어오는지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리하면, ‘AA’는 시작점이지 결승선이 아닙니다

정리해볼게요. 케냐 AA의 AA는 콩의 크기 등급이고, 크고 균일하게 걸러졌다는 뜻입니다. 잘 관리된 로트일 확률과 느슨하게 이어지긴 하지만, 그 자체가 맛의 최고점을 보장하진 않아요.

그러니 다음에 봉투에서 ‘AA’를 발견하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아, 이건 알갱이가 큰 케냐 콩이구나. 그럼 실제 맛은 산지랑 가공, 로스터의 향미 노트로 확인해봐야겠다.” 이 한 단계만 더 밟으면, 글자에 홀리지 않고 진짜 내 입에 맞는 원두를 고를 확률이 올라갑니다. 등급 표기를 아는 건 결국 내 돈을 더 똑똑하게 쓰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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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orge Césa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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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가 처음이라면 원두, 산지에서 잔까지 맛이 이어지는 길에서 전체 글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작권자의 CC BY 4.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