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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 물을 바꿔가며 커피를 내려본 기록

반년간 물을 바꿔가며 커피를 내려본 기록
반년간 물을 바꿔가며 커피를 내려본 기록

부끄러운 고백부터 하자면, 몇 해 전에 저가 정수 필터 하나를 충동구매했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이거 하나면 물맛이 확 달라진다"는 설명만 믿고 샀는데, 몇 주 지나니 물에서 오히려 밍밍한 플라스틱 맛 같은 게 느껴지더군요. 필터 교체 주기도 애매하고요. 그때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물은 “무슨 장비를 쓰느냐"보다 “내 물이 어떤 물인지 아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장비부터 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반년 동안, 같은 원두로 물만 바꿔가며 하나하나 마셔봤습니다. 그 기록입니다.

물 탓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시작은 단순한 의문이었어요. 늘 마시던 원두인데 어떤 날은 산뜻하고 어떤 날은 텁텁했습니다. 원두 봉투도 같고, 분쇄도 저울로 맞췄는데 말이죠. 처음엔 컨디션 탓, 그날 기분 탓인가 했습니다.

그러다 여름 장마철 어느 아침, 유독 커피가 무겁고 둔하게 느껴졌습니다. 바꾼 거라곤 하나, 그날따라 급해서 정수 안 한 수돗물을 바로 끓여 쓴 것뿐이었어요. 그때 “혹시 물인가” 하고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수돗물, 생수, 정수기 물을 하나씩

방식은 단순하게 잡았습니다. 원두·분쇄·물온도·레시피를 고정하고, 물만 바꿔 이틀에 한 종류씩 마셔보는 거였어요. 최대한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려고 아침 첫 잔으로만 테스트했습니다.

  • 끓인 수돗물: 무난했습니다. 다만 어떤 날은 은근히 소독약 냄새 같은 게 향을 살짝 가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받아 두었다 끓이면 나아졌습니다.
  • 일반 생수(미네랄 보통): 개인적으로 가장 균형이 좋았습니다. 산미가 또렷하면서도 밍밍하지 않았어요. 원두 본래 향이 제일 잘 살았습니다.
  • 미네랄 강조 생수: 의외로 별로였습니다. 커피가 묵직해지긴 하는데 향이 눌리고, 산뜻함이 사라져 뭉툭해졌어요.
  • 정수기 물: 깔끔했지만 어떤 원두에선 살짝 밍밍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의 미네랄 함량이 맛을 가른다는 원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먹는물 기준 항목을 찾아보며 어렴풋이 이해했습니다. 자세한 건 연수와 경수 이야기를 다룬 글에서 정리해 두었는데, 직접 마셔보니 글로 읽을 때보다 차이가 훨씬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반년 쓰며 알게 된 장점과 아쉬운 점

가장 큰 소득은, 커피 맛이 흔들릴 때 원두부터 의심하는 버릇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제는 “오늘 무슨 물 썼지?“부터 떠올립니다. 변수를 하나 확실히 잡아두니, 다른 조정(분쇄·온도)도 훨씬 명확하게 판단되더군요. 밍밍하면 물을, 텁텁하면 분쇄를, 이런 식으로요.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생수로 커피를 내리면 은근히 번거롭고 쓰레기가 늘어납니다. 하루 두세 잔씩 마시다 보니 페트병이 금세 쌓였어요. 비용도 무시 못 하고요. 환경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생수를 “특별히 신경 쓰고 싶은 원두"에만 쓰고, 평소엔 받아 두었다 끓인 수돗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씁니다

반년의 결론은 소박합니다. “커피에 완벽한 물"을 찾기보다, 우리 집 기본 물의 성격을 알고 상황에 맞게 고르는 것이 현실적이었어요. 저는 평소엔 미리 받아 두었다 끓인 수돗물, 향이 예민한 산미 원두를 마실 땐 균형 좋은 일반 생수, 이렇게 두 갈래로 정착했습니다.

정수기나 생수 표시·품질이 궁금하다면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한번 훑어보시길 권합니다. 장비를 새로 들이기 전에, 지금 쓰는 물부터 바꿔 마셔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울 게 많았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분은 이런 경우입니다. 원두와 도구는 꽤 신경 쓰는데 맛이 들쭉날쭉해 답답한 분, 그리고 “장비 사기 전에 원인부터 알고 싶은” 분. 돈 안 드는 실험이라 부담도 없습니다. 반대로 맛 차이에 크게 예민하지 않은 분이라면, 굳이 생수까지 갈 것 없이 끓인 수돗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며 참고한 것

사진: Jim Kallig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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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저작권자의 CC BY 4.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